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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Ep.14 : CISO

by @TA 2024. 10. 27.

오늘은 가을의 한복판답게 참 맑고 시원한 날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포터 백팩 당근에 성공한 날이라 나름 목돈을 손에 쥐게 되어

오래간만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을 하고, 몇몇 아파트 임장도 가보았다.

 

여유롭고 기분 좋은 스케줄로 꽉 찬 하루를 보내고,

몇 자 끄적이는 것으로 행복 루틴의 마침표를 찍어준다.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CISO 이야기

 

요즘 회사에서는 여러모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막 정신없이 일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엔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때가 더 많지만

때로는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공허함을 느낄 때도 있다.

 

나는 회사에서 CISO(정보보호 최고책임자)다.

 

업무 범위는 조금 넓은 편으로

본연의 업무인 정보보호뿐만 아니라 IT 인프라 책임자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회사가 상장을 추진하며 IT와 사람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애로사항들이 발생하는데

 

내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은

'목표로 하는 보안 수준과 직원들의 보안 의식 수준의 괴리에서 오는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인가'이다.

 

우리의 업은 상장사 및 증권사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에

정보보호 관점에서는 '메가캡 상장사 및 금융권'에 그 기준을 맞춰야만 한다.

 

잃을 것이 많은 기득권인 대형사와 금융사들은 정보보호에 매우 엄격하므로,

그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들을 대상으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 대해 이제는 IT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 전체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보안적으로 개비해야 하는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여전히 갈등이 존재한다.

 

물론 어느 회사에서나 정보보호 조직을 불편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 회사는 좀 더 힘든 상황인데, 이유는 2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 회사 설립 이후 IT 사업을 확장하며 보안적인 기틀을 다져나가는 것이 아예 처음이다.
  • IT 조직 내 대기업 및 금융권 현업으로 일했던 경험을 가진 인력이 극히 드물다.

위 2가지 배경으로 인해, 정보보호 관련 제도 강화를 추진함에 있어서의 기본적 컨센서스라고 할까.

 

이 부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물론 이건 명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에 대해 적극적인 동의를 바라는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다만 상황적으로 조금 아쉬울 뿐이다.

 

개발/운영/사업 부서에 이러한 문화를 유사하게 직접적으로 경험한 동료들이 있었다면

문화를 만들어가기 훨씬 수월했을 것이라는 그런 아쉬움? 에 대한 푸념이다.ㅎㅎ

 

여하튼 이 부분은 내가 회사에 남아있는 동안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결정적으로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회생활 내내 정보보호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금융권 기업들에서 근무했던 나는

지금 직장으로 이직한 초반에, 이 부분에서 기존 직원들과 컨센을 맞춰가는 과정이 정말로 힘들었다.

 

이게 나는 너무 당연한데, 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 이제는 상황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당 부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는데,

돌이켜보면 바로 이 괴리를 좁혀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관점의 측면에서 나와는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과 수많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갔고

이 과정에서의 고민들로 업무 역량 향상과 인격적 성숙을 얻게 되었다. 

 

분노한 지점이 너의 지적 수준이고
반박한 지점에 너의 결핍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큰 사고 없이 업무를 잘 수행해서

회사의 IPO에 있어 한 축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장기적인 바람으로는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를

누구든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가고 싶다.

 

CISO로서의 생활을 언제 끝마치게 되더라도

스스로 후회 없도록 진실된 맘으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앞으로 직장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별도 카테고리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적어볼 생각이다. 

 

나 자신과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짧은 글귀를 끝으로 이번 Ep를 마친다.

 

살다 보면 마음이 여리고 예쁜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타인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타인의 감정을 누구보다 배려하는 그들은,
함께하는 것만으로 따스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일은,
그들이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색을 읽어간다는 것.

여린 마음을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아름다운 부분들을 문제라 여긴다는 것.

그러나, 같은 색을 품은 사람들은 안다.
가치는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당신의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기를.
크고 작은 상처들로 인해 자신의 색을 잃어가지 않기를.

당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 곁에서.
의심 없이, 충분히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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