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의 흐름이 반환점을 돈 느낌이다.
빗방울이 오랜만에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지금, 물 한잔 하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 지났다.
요즘은 퇴근길에 종종 그동안의 회사 생활에 대한 회고를 하곤 한다. 그간의 업무적인 성취, 인간관계, 회사 외적인 영역에서의 행보 등등..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만족한다.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보통 회사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들에 포커싱이 맞춰지곤 한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대화들이 그래왔지만, 사실 나는 그 관점에 있어서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물론 가끔 수준 낮은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크게 열받을 때가 있지만 말이다. ^^)
회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분개할 거였다면, 애초에 이직을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기로 결심했다는 건, 그 성취의 과정에 있는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겠다고 결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안 좋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언제나 그래왔듯 그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 발전해 나갈 예정이다.
이번 달은 나와 회사 모두 한 단계 성장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 나 : 입사 당시 발표했던 프로젝트 계획들이 있었는데, 이번 달을 끝으로 모두 완료했다.
- 회사 : 상장을 위한 마지막 단계의 시리즈 투자를 확정 지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했던 동료들에 대한 감사함과 나름의 뿌듯함이 앞서지만, 입사 직후 나와 직접적으로 손발을 맞췄던 멤버들 중 지금도 남아있는 사람이 몇 안된다는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역시 작은 회사는 직원 회전율이 참 빠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프로젝트 완료 건도 있지만, 사실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좋은 점 2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1. 업무를 스스로 계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점
2. 1번으로 인해 시간 계획 또한 자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는 점
이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이런저런 요소들로 인해 내가 스케줄을 스스로 짤 수 없는 구조였고, 이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했다.
꼰대들의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으로 인해 내적으로 툴툴댔던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게 무엇보다도 후련하다.
돌아보면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에 대해 이유라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런 적이 별로 없어서 답답한 게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주변 동료들에게 어떤 사항이든 이해할 수 있도록 이유와 배경을 최대한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어떻게 하든 욕은 먹겠지만.. 내가 싫었던 점을 똑같이 행해서 욕먹는 일은 없도록. ㅎㅎ)
회사 외적으로 진행 중인 계획들도 순항 중이다.
다다음달이면 힘들었던 월세 생활을 마치고 새로 매매한 집에 들어간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호기롭게 시작한 월세살이였지만, 다시는 세 들어 사는 일이 없으리라 다짐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가까운 미래의 대 목표인 5년 내 서초구 아파트 실거주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당초 계획대로 임대 사업자를 내도록 하자. 추가로 가능하다면 법인도. ^^
재테크 외적인 계획들은 자격증 취득과 대학원 진학 정도가 있는데, 이 부분도 반드시 올해 마침표를 찍도록 하자.
현시점 내 인생을 생각할 때 무엇보다도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의외로 미래를 기대하고 설렘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앞으로는 더 없어질 것이다.
남은 인생에서도 항상 주도권을 갖고 미래를 그려나가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었던 허준이 교수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을 끝으로 이번 Ep를 마친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쉬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 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 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 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 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 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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